You Have No Respect. Good 'by'

You Have No Respect. Good 'by'

  'You have no respect. Good by.'는 지난 유럽을 여행하며 만난 가장 무례한 사람에게 들은 말이다. 'bye'의 'e'도 빠뜨리고 보낼 만큼 뭐가 그리 급해서 저런 말을 보내고 그 사람은 나를 Whats App에서 차단한 걸까? 가끔 우리는 어떤 말을 기꺼이 해주고 싶은 사람에게서, 되려 해주고 싶은 말을 역으로 듣는 일을 자주 경험한다.


  유럽을 여행하며 좋은 사람을 만났다. 대부분이 친절하고 좋았으며, Excuse me하고 다가갔을 때 기꺼이 도와주었다. 그러나 무례한 사람도 만났다. 슬로바키아의 브라티슬라바 호텔 식당에서 조식을 먹을 때 눈이 마주쳐도 애써 못 본 척하며 나만 커피를 따라주지 않던 웨트리스, 나보다 못한 영어실력을 가지고서 자기가 작게 말해놓고 영어를 못하는 사람 취급하며 소리를 지르던 판도르프 아웃렛의 안내소 직원 등. 그러나 나는 'e'를 빼먹고 나를 차단한 이 사람이 제일 혐오스럽다.
  스위스의 베른, 구글맵과 관광안내소에서 받은 지도를 보며 여행하던 내게 말을 걸던 전쟁 중인 나라의 난민 M. 그의 첫마다니는 ‘어디서 왔니?’가 아닌 '너 중국인이니?'였다. 자신의 핸드폰을 건네며 사진을 찍어달라고 한 그는 계속해서 사진을 찍어줄 것을 요구했다. 스무 장 가까이 사진을 찍어주었을 때, 내 앞에서 사진을 확인하고 모든 사진이 맘에 들지 않는다며 사진을 지워버렸다. 자신은 전쟁 중인 나라에서 왔으며, 스위스 정부에서 스위스패스를 제공해 주었고, 혼자서 할 일이 없어서 이렇게 스위스패스를 가지고 이 나라를 돌아다닌다고 했다. 이야기할 사람이 없어서 정신적인 문제가 올 것 같다며, 왓츠앱 아이디를 나에게 주었고, 연락해도 되는지를 물었다. 그러더니 혹시 지금 함께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 한 잔을 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나도 잠깐 쉬고 싶은 마음에 동의했던 이 제안은 처음부터 거짓이였다. 조금만 가면 나온다던 스타벅스는 한참을 걷고 나서야 나왔고, 이 때문에 나는 한참이나 원래의 계획에서 벗어난 장소에 있었다. 그러고 나서 나의 직업, 월급 등등 자신이 궁금한 것들만 물은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스위스에서 꽤 큰 집을 제공해주어서 혹시 스위스 여행 중이면 호텔을 취소하고 자신의 집을 이용해도 된다는 말 따위 등을 했다. 이미 나는 내일이 스위스 여행의 마지막 날이고 이따가 친구를 만날 계획이라는 말을 했음에도 그는 전혀 새겨듣지 않았던 것이다.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그에게, 나는 친구를 만날 거고 오늘이 스위스 여행의 마지막 날이며 인터라칸으로 꼭가야 한다는 것을 계속해서, 정말 계속해서 이야기해야 했다. 그는 얼마간 베른에서 나를 따라다녀도 되는지 물었고, 그때 나는 약한 마음에 그 제안을 수락했다. 길을 가는 동안 그는 자신에게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며 본 적 없는 팔 동작으로(아마 그나라에서 사람을 욕할 때 쓰는 제스처) 자신을 받아준 나라인 스위스를 욕했다. 모든 스위스인들을 일반화하며 욕했다.
  강가에 다다랐을 때 물에 빠졌던 사람이 콜록거리는 소리를 웃으며 따라했다. 그건 좋지 않은 행동인 거 같다고 말해도 재밌어하며 계속 따라 했다. 그 따라하는 소리가 너무나 역겨웠다. 서양 사람들이 지나갈 때는 어떠한 인사도 하지 않던 그는 한 동양인 가족이 지나가자 '니하오.'라고 인사했고, 그들은 당황해하며 '니하오.'라고 자신의 나라말이 아닌 인사말로 대답했다. 그러면서 나를 자신의 친구이며 형제가 됐다고 했다. 계속 떠들어 댔다. 질문을 하지만 답변을 들은 생각 없는 사람처럼 말을 다 끊어버리며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더운 날씨에 점점 짜증이 났다. 한 번만 더 호텔을 취소하고 자신의 집으로 놀러 오라고 말한다면 폭발할 것 같았다. 내일은 이탈리아로 갈 거라는 말을 몇 번 더 해야 할까.
  결국 참다 참다 공손하게 말했다. 친구에게 문자가 왔고 통화를 해 일정을 논의해야하고, 난 곧 베른을 떠나야 할 것 같아서 이만 헤어져야 할 것 같다고. 그는 떠났고, 나는 이 M을 만난 순간부터 제대로 여행을 즐길 수 없었기에 처음 M을 만난 자리부터 다시 여행을 시작했다. 몸은 이미 더운 날씨와 M의 정신 공격에 녹초가 되어 있었다. 그래도 이 사람 때문의 나의 소중한 하루를 망치고 싶지 않아 꾸역꾸역 계획된 곳들을 둘러보았다.
  그날 저녁 M에게 또 자신의 집으로 오라며 스위스에서 제공한 우편물에 찍힌 주소를 찍은 사진이 왔다. 정말 문자 그대로 나는 10번 이상 그에게 오늘이 스위스 마지막 날이며, 인터라칸이 마지막 스위스 목적지이며, 내일 이탈리아로 떠난 다는 말을 이미 했었다. 차단을 할까 했지만, 정중하게 내일 이탈리아로 간다고 보냈다. 음성이 아닌 문자로 남기면 읽기라도 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다음날 저녁 그는 이탈리아에 있다는 나에게 다시 스위스로 올 계획이 있는지 물었다. 나는 계획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종종 그는 유럽 여행 중에 통화가 가능한지 등을 물었고 친구와 여행 중이라 통화하기 어렵다고 정중히 말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한 번씩 왓츠앱으로 메시지를 보내면, 왓츠앱은 여행에서 친구와 연락하기 위해 설치한 앱이라 더 이상 왓츠앱을 쓰지 않아서 연락이 늦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메시에는 항상 나의 친구, 나의 형제 같은 말이 쓰여있었다.
  두시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자신이 혼자 떠드는 감정의 쓰레기통이 된 것 같은 사람에게 친구이며 가족이라니… 무엇보다도 가장 혐오스러웠던 것은 베른에서 그가 내게 아무렇지도 않게 했던 말이다. 미혼이라는 내게 전쟁이 끝나면 자신의 나라로 초청할 것이며, 자신의 나라 여성이 세계에서 가장 예쁜데, 예쁜 사람을 골라 결혼시켜준다는 말이었다. 대체 이런 발상은 어떤 삶을 살아오면 가능한 걸까? 결혼을 안 한 사람은 모두 안 한게 아니라 못 한 사람이고, 자신이 어떤 사람을 고르면 다른 사람이 그 사람과 기꺼이 결혼까지할 수 있다는 망상이나 오만한 발상을 어떻게 할 수 있지? 소름이 돋았다.

  그러던 며칠 전 나는 왓츠앱을 열었고, M에게서 이틀 전에 온 잠시 이야기할 수 있냐는 말에 답장을 보냈다. 방금 읽었다고. 그때 M은 나에게 'You have no respect. Good by.'라고 보내고, 나를 차단해버렸다.

  다른 사람의 말은 전혀 듣지 않는 사람의 마지막 말이 존중해주지 않는다는 말이라는 게 참 웃겼다. 두 시간도 안 되는 시간 만에 그의 친구가 되고 가족이 되었던 내가 답장을 늦게 보냈다고 그렇게 말하는 게 참 우스웠다. 그리고 정말 고마웠다. 더 이상 그가 나를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만들려는 시도를 포기했다는 뜻이었으므로. bye도 채 다 쓰기 전에 내가 답장을 보낼세라 급하게 by를 고치지 못하고 보내는 꼴이 참 우스웠다. 쉽게 관계를 맺으려는 사람은 쉽게 관계를 끊기도 한다는 걸 다시금 배웠다. 자신이 들어야할 말을 자신이 뱉은 적반하장은 세상 어느 곳에도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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